민우를 떠나 보내며...

by 웹성전지기 posted May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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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들 민우군을 싱가포르로 떠나보내며 유승희 사모님이 한위클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5월8일 파리화랑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들 민우는 그날 낮 비행기 편으로 싱가포르로 가야 하는 일정을 저녁 11시 표로 바꿔 놓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본인이 왜 가야하는지 조차도 잊은 듯...  그렇게 축구가 좋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인가? 밤잠을 설치며 소풍날 아침을 기다리던 우리네 어린 시절의 벅찬 마음처럼 말이다.
싱가포르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민우의 짐을 챙기며 희로애락이 묻어 있는 이곳 파리를 떠나는 아들의 지나간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에 잠겼다.
민우는 1.5세다. 부모를 따라 두 살 반 때 프랑스 파리로 건너 와서 이제 스물여섯 살이 되었는데, 오로지 프랑스 생활 속에서 겪었던 삶은 학교와 교회 외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는 아들이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준비과정과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나름대로의 좋은 추억이 있겠지만, 언제나 민우의 주변에는 같은 또래의 1.5세 2세의 우리 교포자녀들이 서로 아끼는 친구요 형 동생이었다. 해외에 살면서 같은 심정의 그 무언가를 이해하듯 서로를 아껴주는 이들의 우정이 보기 좋았다
파리에서 자란 우리 교포자녀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의리가 좋다. 유학 온 유학생들은 한국에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도 많겠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주변에 같은 언어 같은 얼굴의 친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나이나 환경을 따지지 않고, 든든한 동료애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주말이 되면 함께 만나 농구, 축구를 하거나, 오랫만에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면서 끈끈한 정을 이어왔다.
축구대회의 한판 승부를 기다리던 민우는 이제 조금 후면 부모의 곁을 떠난다. 이제야말로 경쟁사회에 나가서 한판 승부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H.E.C) 졸업을 앞두고 취직이 되어 싱가포르 근무지로 떠나는 덤덤한 아들을 바라보니 왠지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든든하고 대견스럽다. ‘부모노릇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 잘 할거야. 널 믿는다.’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지, 정, 의 교육과 ‘고된 훈련’등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삶을 통해 체험했던 터라 더욱 아들의 앞날을  믿는 것이다.
민우가 중학교 다닐 때였나, 그 당시 겨울에는 왜 그렇게 전철과 버스 파업을 자주 했던지...
당시 파리 외곽에 살던 때인지라, 파업을 하게 되면 파리 시내 학교에 다니는 민우는 두 시간 전에 출발 해 불평 한 마디 없이 학교에 갔다. 찬 바람 맞으며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나는 뒤에서 축복의 기도를 올려 드릴 뿐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러던 민우가 고등학교(Louis le Grand)에 들어가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를 옮겨 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학교 등교 시 같은 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인사를 나누다가 마지막 친구에게 악수를 건네는데, 그 아이가 황색얼굴은 원하지 않는다며 인사를 거부하다가 아들의 안경이 그의 뿌리치는 손에 맞아 바닥에 떨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눈이 매우 나쁜 아들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얘기를 청했지만 자존심이 상한 아들과 그러한 상황이 되리라고 예상치 못한 그 친구와 순간적으로 일어난 팽팽한 긴장 속에, 손을 잡고 빼고 실랑이 하는 사이 수업시간이 되었고 그 아이는 이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오후에 나타난 아이는 의사인 아버지, 약사인 어머니와 함께 손목에 난 상처 3주 진단서를 가지고 학교에 왔고 학교 내의 사회 상담원, 담임선생님, 1학년 총책임 선생님께 아들은 심한 질책을 받으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민우는“너희 집 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 부모가 이혼한 건 아니냐? 친구들과 자주 이런 행동을 하느냐?”등등의 질문에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단순한 인사에 거부당하는 아들의 사소한 사건이 어른들의 또 다른 세계의 언어로 비약되어 이제는 부모까지 학교에 불려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의 충격과 두려움은 아들이 학교를 당장 그만두고 싶은 지경으로 몰아 넣었다.
우리 부부는 학교에 가서 먼저 정중히 사과하고, 동시에 주변에 있던 반 친구들이 증인이 되어 사실적으로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민우는 여전히 힘들어 했고 학교 전학을 요구해 왔다. 우리 부부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1학년 때까지는 네 자신의 인내를 위해서 그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고, 그를 이해하고 난 이후에 떠나라! ”
얼굴색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일을 지금 극복하지 못하고 이 상황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면, 사회에 나가서는 더 더욱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1학년 마칠 때쯤 학교를 물색하고 있는 중에 민우는 학교를 옮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교에 잘 적응했고, 자기와 문제가 있었던 아이는 공부가 부진해서 다른 학교로 옮겨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민우는 그 학교에서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당시에 민우로서는 첫 시련이었고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어느 곳에서나 있고 어려움은 우리 자신이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를 어느 관점에서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친 민우는 이후 학교생활에 큰 문제없이 그랑제꼴까지 입학했고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좋은 회사에 취직되어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감사하다. 그리고 기쁘다. 아들이 잘 자라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떠나는데 어느 부모가 기쁘지 않겠는가?
밤을 설치고 경기한 그날 축구성적은 예선에서 밀려났지만 네 번의 게임을 뛰면서 소리 지르고 운동장을 누비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에서 일등이 되라는 요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마음 속으로 격려해주었다.
그날 각기 다른 팀에서 뛰면서 뒹굴었던 친구들은 아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런 친구, 동생, 형들을 마음 속 깊이 그 작은 눈으로 고마워하는 민우의 모습이란… 그 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저녁 11시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가보니 친구들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같이 가겠다고 운동장에서 함께 차를 타고 쫓아온 형, 축구장에서 발을 다쳐 도저히 올 상황이 안 되던 친한 친구가 또 나타나 감동받는 아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한인 청소년, 청년기를 이끌어줄 수 없는 열악한 교포사회 환경에서도 아들뿐 아니라 이들 모두가 다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일들에 좋은 열매가 맺혀 지기를 소원하는 나의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어느 새 민우는 탐승구의 문 안 쪽으로 사라져갔다.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차창에 부딪치는 비를 보며 우리 부부는 프랑스에 사는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이들이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
세심히 챙겨줄 만한 환경이 못 되는 좋은 가정의 모델도 아니었지만 부모가 하는 일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었던 아들의 신뢰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더 열심히 충실하게 해낼 것이다.
민우야, 우리가족 모두 힘내자! 화이팅!!!

글 / 유승희(빠리침례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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